음악이 멈춘 순간 삶이 울리는 소리
소리가 사라지고 나서야 들리기 시작한 것들
- 이어폰을 뺀 순간 나는 처음으로 지금을 들었다
출근길 퇴근길 집안일을 할 때 글을 쓸 때조차
나는 늘 음악을 틀어두었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어색했고
고요는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어폰을 끼는 것이 기본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배터리가 나간 이어폰을 주머니에 넣고 그냥 걸었다
그날 따라 음악 없이 걸은 20분은
처음엔 지루했고
그다음엔 조용했고
그리고 끝에는 놀라울 정도로 충만했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아이들이 떠드는 웃음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마찰음까지
삶은 사실 늘 연주되고 있었다
내가 그걸 듣지 못했던 건
음악 때문이 아니라
소음이 필요하다는 내 불안 때문이었다
- 침묵 속에서 나를 흔든 건 오래된 감정이었다
음악은 감정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배경이었다
슬플 때도 공허할 때도
노래 한 곡으로 그 감정을 덮고 지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음악이 멈춘 공간은
그 감정들과 직접 마주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 침묵은 나를 정면으로 데려갔다
지금 외롭다
조금 슬프다
사실 기쁘지 않다
라는 말들이
소리 없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음악이 사라졌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란 걸
오히려 감정은
음악 없이 더 또렷하게 얼굴을 드러냈다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진 건
음악이 아니라
내 마음의 진짜 소리였다
- 우리는 너무 많은 음악 속에 살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음악은 선택이 아닌 배경이 되었다
카페에도 엘리베이터에도 지하철에도 음악은 있었다
이제는 조용한 공간이 오히려 낯설다
심지어 조용함을 불편하게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정말 음악을 듣고 있었을까
아니면 음악에 나를 묻고 있었을까?
음악은 감정을 감싸주지만
때론 감정을 흐릿하게도 만든다
계속해서 들리는 소리 속에서
나는 나의 리듬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의도적으로 음악을 끄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보니
나의 하루가
나의 걸음이
나의 감정이
조금씩 나만의 박자를 되찾고 있었다
- 음악이 없는 공간에서도 삶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음악은 때때로 삶을 영화처럼 만들어준다
분위기를 잡아주고 감정을 채색해주고
내가 느끼지 못한 무언가를 끌어올려 준다
하지만 그 모든 장치 없이도
삶은 여전히 울림이 있었다
밤에 불 끄고 침대에 누웠을 때
새벽 5시에 창문을 여는 순간
아무 말 없이 마주 앉은 누군가와의 조용한 시간
그 어떤 배경음악보다 깊고 조용한 울림
음악이 없는 시간은
예술도 기교도 없었지만
삶이 본래 가지고 있는 리듬을 되찾게 해주었다
나는 이제 음악을 덜 듣지만
음악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요한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음악이 멈췄다고 해서
인생이 멈추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삶은 가장 선명하게 울린다
이제다시
음악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크다
그렇지만 가끔은
그 소리를 잠시 내려놓는 것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공백 속에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숨소리
거리의 리듬
마음속 작은 진실들
음악이 멈춘 순간
진짜 삶이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