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읽기보다 마음이 흔들린 순간을 믿기로 했다
- 잘 아는 사람만 감상할 수 있다는 오해
예술 앞에 서면 자주 긴장하게 된다
그림 하나를 오래 보지 못하고
음악을 들으면서도 제목이나 작곡가를 떠올리느라 바쁘다
왜일까? 어쩌면 감상은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착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시회에 가면 꼭 누군가 말한다
저 작가가 누구더라?
이 시기가 인상주의 말기일걸?
이건 색의 상징이 중요한 작품이야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입을 다문다
그림을 ‘안다’는 것이 그림을 느낀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공간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예술은 이해보다 감정이 먼저 가닿는 세계다
지식 없이도 심장이 반응하고
눈물이 날 만큼 벅차거나
왠지 모르게 아련한 장면에 오래 머물게 되는 순간
그때 필요한 건 미술사나 음악이론이 아니라
지금 이 장면이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을 흔들었는가다
- 감상은 해석이 아니라 감정의 기록이다
한 장의 그림 앞에서 멈춰 섰다
붓질이 거칠고 색은 흐릿했으며 전체 구도도 어지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 그림에서 이상하게도 평온함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색도 아니었고 전혀 유명한 작가도 아니었는데
그때 깨달았다
예술 감상은 해석이 아니라 감정의 기록이라는 걸
우리는 종종
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를 묻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작품이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예술은 해석이 정해져 있지 않다
작가의 의도보다 감상자의 인생이 그 의미를 완성시킨다
누군가에겐 위로인 장면이
누군가에겐 두려움일 수 있다
정답 없는 감정의 반응이 바로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순간이다
보는 눈은 기술이지만 느끼는 마음은 삶이다
내 삶이 달라질 때마다
하나의 작품이 주는 울림도 달라진다
- 좋아하는 감정을 믿기 시작하면서 바뀐 것들
어릴 때 미술 시간에는 늘 평가 기준이 있었다
명암을 잘 넣었는가 비율이 맞는가 완성도가 있는가
그래서 나는 늘 나의 그림을
틀렸거나 부족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미술관에서 천천히 감상을 시작한 이후
내가 좋아하는 감정을 믿게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기교나 해석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지 아닌지만이 기준이 되었다
어떤 날은 색감 하나에 빠져들고
어떤 날은 뭔가 부족해 보이는 여백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날의 기분 계절 나의 내면 상태에 따라
예술의 무게가 달라지는 경험
그때서야 알았다
예술은 완벽하거나 훌륭해서가 아니라
솔직해서 감동적인 것이라고
왜 좋은지 모르겠는데 좋다
이 감정을 믿기로 했다
그때부터 예술이 내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길거리 벽화도 지나가는 피아노 선율도
이제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 예술은 이해가 아닌 동행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예술을 이해하려고한다
하지만 때로는
이해할 수 없기에 더 오래 남는 감정도 있다
예술은 설명이 아니라 동행이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한 작품이 오랜 시간 마음에 남는 건
그것이 내 인생의 어떤 시기와 조용히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상실을 겪던 시기에 자주 들었던 음악
감정을 말로 꺼낼 수 없던 날에 오래 바라봤던 그림
그 예술은 내게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고
그저 거기 있어주었다
예술은 누군가의 삶에서 온 것이고
감상은 또 다른 삶과의 연결이다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작품의 기법이나 시대적 맥락 상징 같은 것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예술은 나와 함께 걸어주는 친구 같다는 것
말없이 감정을 알아봐 주고
감정이 없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존재
그래서 예술은 보는 눈보다
결국 느끼는 마음으로 살아야 가능한 이야기다
우리는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 예술은
배워야 하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믿는다
예술은 느낄 수만 있다면 누구의 것이든 될 수 있다
그림을 몰라도 그림에 울 수 있고
음악을 몰라도 어떤 소리에 눈을 감을 수 있다
예술은 결국 삶을 더 깊이 살아내는 방식이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만 있다면
예술은 늘 당신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