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음으로 몸짓으로 언어로사랑은 늘 그 안에 있었다
- 사랑이라는 말 대신 예술이 전한 마음
사랑해요 라는 말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너무 늦게 알게 된 사랑 이미 지나간 사랑 혹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부끄러운 마음을 담고 있을 때는
그 한마디가 목끝에서 맴돌다 사라진다
하지만 말로 전할 수 없는 사랑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건 다른 형태로 살아남는다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되고 시가 되고 춤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는
오래도록 아픈 아버지 곁을 지키며
붓을 들었다고 했다
말을 하면 아버지가 괜히 더 미안해하시니까
차라리 그 감정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었어요
그림 속 색은 따뜻했고
형태는 흐릿했고
공간은 느슨했다
그건 말로 하지 못한 사랑이 만든 풍경이었다
모든 예술은 결국 사랑을 담는다
직접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술이 그 마음을 대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사람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는 사람
죽은 가족을 그리워하는 사람
그들은 모두 예술을 통해
마음속 사랑을 세상에 꺼낸다
- 표현의 방식은 달라도 결국 닿으려는 마음
예술은 방식만 다를 뿐
전하고자 하는 마음의 본질은 같다
그게 바로 닿고 싶은 마음사랑이다
어떤 사람은 붓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그림 한 장을 완성하기 위해 수십 번의 레이어를 쌓아가는 과정
그건 사람 한 명을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실패하고 다시 덧칠하고
감정을 놓쳤다가 다시 잡아내며
하나의 작품을 통해
그 마음은 결국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란다
음악가에게 사랑은
소리로 만들어진다
이별 후에 피아노 앞에 앉아
말없이 건반을 두드리는 그 순간
그는 말하지 못한 감정을 악보에 옮긴다
그리고 그 음악은
누군가의 밤을 조용히 감싸준다
시인은?
그는 말로 할 수 없는 사랑을
더 조용한 언어로 바꾼다
직접 말하지 못한 마음을
비유와 은유 쉼표와 행갈이로 바꿔
슬며시 독자 손에 쥐어준다
각기 다른 도구를 사용하지만
예술은 늘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닿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사랑에서 출발한다
- 사랑은 때로 슬픔이라는 얼굴로 온다
예술 속 사랑은 반드시 달콤하지 않다
오히려 가장 깊은 예술은
슬픔을 품은 사랑에서 태어나곤 한다
마크 로스코의 붉은 화면은
단순한 색의 나열이 아니라
슬픔을 견디는 사랑의 밀도다
그 안에는 신을 향한 갈망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애정이 있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은가
사랑은 단지 설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상처의 무게도 따라온다
예술은 그런 모순을 정직하게 품는다
춤도 마찬가지다
현대무용 중 많은 작품은
사랑의 부재, 상실, 그리움을 주제로 삼는다
말 대신 몸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그 순간
관객은 그 고요한 움직임 속에서
사랑이 떠나간 자리를 본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슬픔마저도 사랑의 다른 얼굴이다
예술은 그걸 숨기지 않고 꺼낸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 앞에서 울 수 있는 것이다
- 예술이 가르쳐준 사랑의 또 다른 이름 나
우리는 종종
사랑을 타인에게 향하는 감정으로만 여긴다
하지만 예술은 그것만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랑의 또 다른 방향은 나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하루 종일 캔버스에 쏟아낼 때
그건 자신을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하려는 사랑의 표현이다
음악을 만드는 이가
자기만의 루틴을 지키며
정성스럽게 사운드를 쌓아 올릴 때
그건 자신과 화해하려는 노력이다
예술은 타인을 위한 것도 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사랑이 될 수 있다
세상에 수많은 작품이 있지만
그 시작은 늘 작가 자신이었다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못 그려도
악보를 읽지 못해도
마음속 사랑을
작은 낙서로 음성 녹음으로 노트 한 장으로라도
꺼낼 수 있다
사랑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닿지 않아도 괜찮다
예술이 되어 내 안에 머무를 수만 있어도
충분히 빛난다
모든 예술은 사랑을 담는다
그 사랑은 말로 하지 못한 감정일 수도 있고
이미 지나간 시간을 붙잡으려는 손짓일 수도 있다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한 작고 조용한 다정함일 수도 있다
표현 방식은 수천 가지지만
그 출발점에는 늘 누군가 또는 나 자신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 있다
붓이든 피아노든 카메라든
심지어 일기장 한 장조차도
그 안엔 사랑이 깃든다
그러니 우리가 예술을 감상할 때마다
어쩐지 가슴이 저릿한 이유도
눈물이 나는 이유도 당연하다
사랑은 늘 그 안에 있었으니까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니까